2009년 05월 24일
<단상>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이 어제가 되어버렸다. 시간은 우리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작년부터 하도 이미지로는 친근했던 인물들이 삶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어온지라, 충격은 최진실 씨의 죽음 때보다 덜했다. 그땐 정말 "최진실이 어떻게 죽지?"라는 물음을 던졌다면, 이번 일은 "법정대결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전직 대통령에서 변호사로 돌아가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고 이른바 "실체적 진실"을 두고 다투기에는 부담스러웠을까. 혹자는 산 중달이 죽은 공명에게 당한 것처럼 이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라 말하지만, 그의 시신에서 온기가 이제 막 가셨을 시점에 이런 추측은 개념 없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그의 죽음과 국가 경제와의 영향을 운운하는 것과 저급한 수준의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세상의 인과율은 무섭게 그 존재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그의 형인 노건평 씨를 옹호하며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던 일이 불과 5년전 이맘때인데, 그가 현정권과 검찰 수사의 압박과 언론의 난도질에 이런 최후를 선택하게 됐다는 것에서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물론, 두 사건 사이의 분명한 인과관계를 정립하려 노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명백한 오류이지만, 사람의 감정과 소위 직관은 이런 간극을 쉽사리 뛰어넘을 수 있으므로 굳이 생각을 꺾어넘기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이모저모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또 그게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향한 노력을 가열차게 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와 갈등관계에 있는 세력이 집권한다면, 당선되기 전부터 털 먼지가 많다고 회자됐던(allegedly) 그가 노 전 대통령이 처했던 위기보다 못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을까. 민주당 쪽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주류와 비주류 간의 갈등구도에 국민의 감정적 지지를 받아 결집된 친노세력이 또다른 major player로 부상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재보선 결과로 탄력을 받았던 진보신당의 입장에선 대안 세력의 지위를 친노세력이 주축을 이룬 민주당에 선점당한다면, 다시 위기를 맞겠지만, 과연 그런 일이 생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적으로 당선되던 2002년 12월 어느날 밤에는 정몽준 의원의 지지철회에 분노 내지는 패닉 상태에 빠져 신문을 수거하려 나가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장에 모든 권력이 넘어갔다"고 말하며 그는 내게 회의를 주기 시작했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과 한미 FTA 추진, 그리고 대추리 사건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나는 그에 대한 지지를 완전히 철회했었다. 역시 정치인을 믿으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이 한번 더 강화되고, 올해 4월부터 그가 겪은 고초들을 무심하게 관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봤었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이 내게 준 충격은 작지 않아 오늘 하루 내내 우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고, 그가 지녔던 인간적 매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혹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가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 by | 2009/05/24 01:48 | 정치/정치학 | 트랙백




